교육철학 및 교육사_서양교육사 중세의 사회와 교육 역사적으로 중세는 서로마제국이 망한 476년에서 동로마제국이 망한1453년까지의 시기다. 다른 상징적인 면에서 주우세 시작을 베네딕스 수도원의 건립된 529년으로 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황제에 의해서 기원전 385년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메이아가 529년 문을 닫는다. 이렇게 보면 ,529년은 고대 그리스의 유산이 문을 닫고 기독교의 유산인 수도원이 새로 등장한 상징적인 해이다. 중세의 시작을 언제로 보든지 간에, 중세라는 용어의 등장이 14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된 점을 주목해보자. 페트라카라는 과거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영광스런 시대와 그 이상으로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의 추악한 중간시대라는 말을 이해했다. 오늘날 중세를 암흑시대로 여기는 것은 르네상스 인들의 이러한 평가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그들은 미개했던 게르만족에 의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고대 로마의 문화가 파괴되었다는 점과 중세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종교적 권위를 우선시 했던 기독교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사적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인들은 교육에 대체로 무관심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의 이성이나 현세적 삶보다는 내세적 삶이 훨씬 중요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를 꼭 암흑시대로 말하기 어렵다. 시대에 대한 평가는 항상 후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과 중세에도 새로운 교육제도와 방식이 나타났으며, 이 영향으로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 사회의 변화를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종교적으로 기독교의 전파, 경제적으로 봉건제의 등장과 몰락, 사회문화적으로 도시의 발달과 대학의 발생이다. 첫째 중세 유럽은 종교적으로 기독교가 지배했다고 과언이 아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기독교를 공인되면서 점차 이교도인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가르치던 로마의 학교는 몰락하게 된다. 둘째 봉건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노예제가 붕괴된 후에 성립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제 앞에 등장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자본제가 교환을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라면 봉건제는 영주와 농노가 토지를 매개로 소작하는 경제체제이다. 셋째 도시의 발달과 대학의 발생이다. 중세 시대 사회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십자군 원정이다. 십자군 원정은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인의 예루살렘 순례를 방해한 데에서 촉발된 것으로 로마 교황의 제창에 따라 이루어진 성지를 탈환 전쟁이었다. 십자군 원정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약200년간에 걸쳐 진행된 원정 과정에서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한 수공업과 상공입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십자군 원정길을 따라 지역 간의 교육이 활발해졌다. 그 결과 봉건제의 몰락과 함께 도시가 발달하게 된다. 또한 활발한 무역으로 인해 새로운 계층(bourgeois)이 등장한다. 이들 가운데에는 상호 간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합(guild)을 결성하였고, 점차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나갔다. 조합의 결성과 도시가 발달하자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하여 대학이 발생한다.
2. 중세 사회의 변화와 교육
1) 교회교육
로마제국이 멺아한 후 혼란스러운 사왕에서 학교 교육은 교회의 손에 맡겨진다. 이교도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로마의 학교교육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은 한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회는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성직자들의 성서 연구 호라동과 이교도를 대상으로 하는 교화 사업을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속적 학문을 어쩔 수 없이 가르쳐야 했다. 또한 교회는 교육을 종교적 목적에 직접 도움이 되는 범위 이상으로 확대해 나간다. 결국 교회는 종교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적인 교육내용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신도와 성직자뿐만 아니라 비신도자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대상을 폭넓게 확대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중세 말기에 이르러서는 로마제국의 일반교육과 같은 학교제도가 생기게 된다. 중세의 학교는 문답학교, 고급문답학교, 사원학교, 수도원학교가 있었다. 문답학교는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가르치는 학교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아동과 이교도에게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교육을 실시하고자 설립되었다. 고급문답학교는 문답학교의 교사나 교회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다. 이 학교에서는 기독교 교리를 바탕으로 신학, 철학, 자연과학, 수사학, 천문학, 문학, 역사학 등을 가르쳤다. 사원학교는 본산학교 또는 감독학교로 불리며, 이 학교는 교회의 지도자와 성직자를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었으나 나중에 일반인 자녀도 받아들였다. 교육내용은 읽기,쓰기, 찬송가 등 기초적 공통교과를 이수한 후에 7자유교과(문법, 수사학, 변증법, 기하학, 대수, 천문학, 음악) 와 신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원학교는 수도상를 양성하기 위해 수도원에 부설한 학교로 중세의 대표적인 교욱기관의 역할을 수행했다. 원래 수도원은 현세의 타락과 기독교 박해를 피해 동방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생겨났다. 수도원의 성직자는 철저한 육체적, 정신적, 금욕을 통하여 자신의 한 평생 기도와 신앙에 바치는 엄격한 종교적 삶을 살았다. 한편 철저한 금욕생활을 수행하는 수도원은 사실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기가 좋은 환경이 아니었따. 성 베네딕트(480-543)가 창설한 베네딕트 수도원의 회칙에는 무소요, 순결, 복종을 기본 이념으로 매일 4-5시간의 기도, 6-7시간의 노동을 하였다. 심지어 이교도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교육을 경멸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세의 수도원이 완전히 교육에 무관심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수도원은 필사실을 두어 성서나 기도문 제작을 위해 책을 베껴 쓰는 일을 했으며, 부속 학교를 운영하였다. 이들 부속 학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육을 수도원 밖의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확대한다. 수도원 학교의 교육은 본질적의로 성직자를 위한 교육이었지만, 나중에 중세 문화를 선도하는 교육기고나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교육의 목적은 현세가 아닌 내세의 삶을 위한 준비 로 볼 수 있다. 또한, 교육내용이 무엇이든지 신앙에 도움이 되어야 했으며, 교육을 받는 사람은 교양을 갖춘 실무자가 아니라 교육받은 성직자였다.
교회교육 중 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기독교 교리를 설명한 철학이다.
교부철학은 플라톤의 관점에서 기독교 교리를 설명한 철학이다.